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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광해 임금보다 더 임금 같은 천민

by laneahmik 2023.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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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포스터 (출처 다음영화)

 

왕이 된 천민

광해군 8년. 붕당정치로 인해 왕위를 둘러싼 권력 다툼은 점점 심해지고, 조정은 더욱 혼란 속으로 빠지기만 합니다. 그로 인해 조선의 왕 '광해'는 크고 작은 역모의 불씨들로 목숨을 위협받으며, 분노와 두려움에 점점 난폭해집니다. 그러던 어느 날 광해는 도승지 '허균'을 불러 갖은 위협에 자신 대신에 노출시킬 수 있는 대역을 찾아오라고 합니다. 명을 받은 허균은 저잣거리에서 왕과 똑같이 생긴 만담꾼 '하선'을 발견합니다. 하선은 도승지를 따라 궁으로 들어가게 되고, 왕을 대면합니다. 광해는 하선에게 자신을 따라 해보라고 합니다. 잠시 망설이던 하선은 이내 왕의 말투, 목소리, 기품 있는 분위기를 바로 흉내 냅니다. 광해는 흡족해하고, 그렇게 하선은 광해가 출타하는 밤에 잠시 동안 왕의 대역을 합니다.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 듯했지만 갑자기 광해군이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사건이 생깁니다. 군란에 대비하기 위해 도승지는 왕의 대역을 소화할 수 있는 하선을 다시 궁으로 불러옵니다. 그렇게 갑자기 왕이 된 천민 '하선'의 정치가 시작됩니다.  

 

친절해진 광해군

갑자기 시작한 왕 노릇이 능숙할 리 없는 하선에게 도승지 허균은 궁중예절 및 주요 대신들에 대해서 교육을 해주고, 하선이 왕의 대역을 잘 소화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렇게 허균의 교육으로 조금씩 국정에 대해 알아가는 하선이지만 왕의 대역이기 전에 천민이었던 하선은 너무나도 선량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수라를 남기면 남은 것으로 수라간 궁인들이 끼니를 해결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하선은 팥죽 한 그릇만 먹고 수라를 모두 남겨 궁인들이 먹을 수 있도록 합니다. 광해는 차갑고, 쉽게 곁을 내어주지 않는 사람이었으나 하선은 궁인들에게도 자상하고, 잘 웃어주면서 중전에게도 그동안의 광해와는 다른 태도를 보여서 여러 궁인들을 당황시킵니다. 그리고 열다섯 살의 기미를 보는 나인 '사월이'가 궁에 오게 된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이 쓰인 하선은 사월이에게 가족을 찾아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리고 사월이를 가족과 헤어지게 만든 부당한 정책에 분노한 하선은 서서히 자신의 주관대로 국정을 운영하기 시작합니다.

 

왕 보다 더 왕 같은 남자

서서히 국정에 눈을 뜨게 된 하선은 옳고, 그름과 상관없이 자신들의 이득과 위치가 우선인 대신들을 보면서도 생각보다 왕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나 하선은 여러 대신들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동법을 시행하고, 현실적으로 백성들을 위한 정책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제법 군주다운 면모를 보이면서 진짜 왕이 된 남자 하선. 하지만 조정 대신들은 더 이상 자신들의 마음대로 국정을 운영하기 어려워지자 더욱더 하선에게 반감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하선의 팥죽을 사월이가 검식을 하고, 하선은 유독 맛있다면서 팥죽을 먹습니다. 그런데 사월이가 흐느끼며 하선에게 "전하, 부디 강녕하시옵소서."라고 이야기한 뒤 피를 토하고 정신을 잃습니다. 알고 보니 사월이는 왕을 해하기 위해서 사탕을 입에 물고 있다가 검식을 할 때 왕의 팥죽에 넣으라는 상궁의 압박을 받았고, 자신을 진심으로 아껴준 왕을 대신해서 독이든 사탕을 끝까지 입에 물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사월이는 하선을 지켜내고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에 분노한 하선은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절도사를 포박해옵니다.  때마침 하선이 가짜라는 첩보를 입수한 대신들은 절도사가 끌려갔다는 소식을 듣고는 군사들을 이끌고 궁으로 쳐들어갑니다.

 

역사 속의 광해군

광해군은 조선의 제15대 왕으로 임진왜란 이후에 부국강병의 기틀을 다졌으나 인조반정으로 폐위된 왕입니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승정원일기에서 15일간 광해군의 행적이 빠져있는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들어진 내용입니다.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광해군은 왕권 안정화를 위해서 영창대군과, 임해군을 제거하고, 인목대비를 유폐시켰다고 합니다. 이런 부분들로 광해군은 연산군과 함께 폭군으로 이야기되기도 합니다. 광해군은 당시 서인과 북인 사이에서 벌어진 갈등이 심화되면서 이에 희생되었습니다. 폐위된 광해군의 가족은 강화도로 유폐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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